설은 신라시대부터 기록을 찾을 수 있으며, 고려시대에는 9대 명절 중 하나로, 조선시대는 '한식',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로 받아들여졌다. 설날이 되면 아침 일찍 일어나 설빔으로 갈아입고 집안의 웃어른에게 세배를 드리고 조상에게 차례를 지냅니다.
📅 설날의 날짜 설날은 음력 1월 1일에 해당하며, 한국의 주요 명절 중 하나입니다.
현대 한국에서는 양력 1월 1일도 새해로 기념됩니다.
🎉 명절의 중요성
설날은 추석과 함께 가장 대표적인 한국의 명절로, 가족과 함께 모여 새해 복을 기원하는 기회입니다.
🌟 법정 공휴일
설날과 하루 전날, 다음 날이 포함되어 총 3일이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정의
한 해의 시작인 음력 1월 1일을 일컫는 말로 설날이라는 말과 같은 우리나라의 명절. 설날 · 원일 · 원단 · 원정 · 원신 · 원조 · 정조 · 세수 · 세초 · 연두 · 연수 · 연시 · 신일 · 달도 · 구정.
◈ 개설
설은 시간적으로는 한 해가 시작되는 새해 새 달의 첫 날인데, 한 해의 최초 명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신일(愼日) · 달도(怛忉)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근신하고 조심하는 날이라는 뜻이다
설이란 용어를 나이를 헤아리는 말로 해석하기도 한다. 해가 바뀌어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첫 날인 ‘설’을 쇨 때마다 한 살 씩 더 먹는다. 설을 한 번 쇠면 1년이며 두 번 쇠면 2년이 되는 이치를 따라 사람의 나이도 한 살씩 더 늘어난다. 결국 ‘설’이 사람의 나이를 헤아리는 단위로 정착하여 오늘날 ‘살’로 바뀌게 된 것이라 한다.
이밖에도 설이 새해 첫 달의 첫 날, 그래서 아직 낯설기 때문에 ‘설다’, ‘낯설다’ 등에서 유래했다는 말도 있다.
설을 설명절이라고도 하거니와 설명절은 하루에 그치지 않는다.
설이란 용어 자체는 정월 초하룻날, 하루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실제 명절은 대보름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설을 설명절이라고 했다고 볼 수 있다.
1. 설의 역사적 변천
한국설(韓國雪)의 역사적 변천에 대해서 살펴보면, 설은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명절 중 하나로, 그 역사와 의미가 시대마다 변해왔습니다. 한국설의 역사적 변천은 주로 고려, 조선, 그리고 현대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설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7세기에 나온 중국의 역사서에서 볼 수 있다.
음력설은 서기 488년 신라 비처왕 시절 설날을 쇠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있으며, 이후 고려와 조선까지 이어졌다.
고려사에는 고려 9대 속절(俗節, 명절)로 원단(元旦, 정월 초하루 설날), 상원(上元, 정월 대보름), 상사(上巳, 후에 삼짇날이 됨), 한식,단오, 추석 중구(重九), 팔관(八關), 동지가 소개되어 있다.
조선시대는 원단 · 한식 · 단오 · 추석을 4대 명절이라 했지만 그렇다고 다른 명절이 약화된 것은 아니다. 민간에서는 오히려 전 시대보다 세시명절과 그 무렵에 행하는 세시풍속이 다양했다.
2. 설의 세시풍속
날을 비롯하여 각 세시명절에 행해지는 세시풍속은 대체로 소망을 기원하는 의례적인 성격을 지닌다. \
기원의 대상은 신(神)과 같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무언가 ‘초월적인 힘’이 되기도 한다.
세시풍속은 농사를 중심축에 놓고 행해지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농경의례라고도 한다
의례
설날 아침에는 조상에게 차례를 지낸다. 차례는 종손이 중심이 되어 지내는데 4대조까지 모시고 5대조 이상은 시제 때 산소에서 모신다. 차례를 마치고 가까운 집안끼리 모여 성묘를 하는데 근래에는 설을 전후하여 성묘를 한다.
속신
설을 전후하여 세시풍속이 다양한 만큼 속신 역시 다양하게 나타난다. 설은 사실상 섣달 그믐부터 시작된다고 할 만큼 그믐날밤과 초하루는 직결되어 있다. 끝과 시작은 동시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섣달 그믐날 밤에는 잠을 자지 않는다.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는 속신이 있기 때문이다.
설 음식을 세찬이라고 한다. 세찬의 대표적인 음식인 떡국을 먹어야 나이 한 살을 먹는다고 했다. 그래서 떡국을 먹지 않으면 나이를 먹을 수 없다는 속설도 있다.
또한 설날이나 상묘일(上卯日, 첫 토끼날)에는 여자들이 아침 일찍 남의 집에 출입하면 그 집에 재수가 없다는 속신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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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식과 음식
설날에 입는 옷을 설빔이라 한다. 『경도잡지』에는 남녀가 모두 새 옷을 입는 것을 세장(歲粧), 『열양세시기』에는 남녀노소가 모두 새 옷을 입는 것을 세비음(歲庇廕)이라 기록되어 있다. 설날에 색깔이 있는 옷을 입는데 특히 여자 어린이들은 색동저고리를 입는다. 노랑이나 녹색 저고리에 붉은 치마는 오늘날까지도 설에 어린이들이 입는 가장 보편적인 옷이다.
놀이
설의 놀이는 이미 섣달 그믐 무렵부터 즐기기 시작하여 대보름 무렵까지 즐긴다. 연날리기는 섣달 그믐 무렵부터 시작하여 대보름까지 즐긴다. 보름날의 연은 액연(厄鳶)이라 하여 멀리 날려보낸다. 원래 보름날 이후에는 연을 날리지 않는 것이다. 그밖에 설날 무렵 윷놀이 · 널뛰기 · 승경도놀이 · 돈치기 등을 한다.
3. 현대사회의 설
근대국가에 들어 우리나라에는 음력설(구정)과 양력설(신정)로 두 개의 설이 있었다. 이른바 이중과세(二重過歲)라는 것이다.
음력설은 전통적인 명절, 곧 설을 의미하며 양력설은 현재 일상력으로 사용하는 태양력(양력)에 의한 설이다. 그러나 전통명절은 설날이며 구정(舊正)이란 용어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 요즘 설날은 추석과 함께 전후하여 3일간 연휴이다. 그러나 구정으로 일컬어졌던 ‘설날’이 오늘날과 같이 본명을 찾기까지는 우리 민족의 수난의 역사와 나란히 할 만큼 진통을 겪었다.
1896년 1월 1일(음력으로는 1895년 11월 17일, 이 기준으로는 고종 32년)에 태양력(양력)이 수용되고도 우리의 전통명절인 설날은 이어졌지만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수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오랫동안 공휴일 또는 비공휴일 문제로 몇 차례 오락가락하던 우리의 설날은 1985년 ‘민속의 날’로 지정되어 1일간 국가적인 공휴일이 되기에 이르렀다.
4. 특징과 의의
설은 우선 한 해의 첫날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며 특히 신성한 날이라는 신앙적인 의미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설은 신성성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오늘날의 설은 국가차원의 공휴일이지만 전통사회에서처럼 대보름까지 설명절이 이어지지는 않는다.
설날은 초하루로서 차례를 지내는 날이다. 그리고 성묘는 설을 전후하여 한다.
근래에는 설 연휴를 이용하여 국내외 여행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 반면 민속박물관이나 민속촌과 같이 설날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곳을 가족 단위로 찾는 문화가 생성되기도 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구정과 신정이라는 신년을 두 번 맞는 문화를 만들었다. 설날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면서 오늘날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와 같은 인사말을 연간 두 번에 걸쳐 한다. 좋은 말이니 많이 할수록 좋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태양력을 기준으로 한 새해에 이미 인사를 하고 다시 설에 똑같은 인사를 한다는 것이 다소 어색하다.
실상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신년 인사말은 전통적인 덕담이 아니라 새로 생긴 현대판 덕담이다.
그렇다면 일상력인 양력으로 새해를 맞았을 때에는 신식 덕담을 나누고 우리 전통명절인 설날에는 “과세 안녕히 하셨습니까”, “과세 편안히 하셨습니까”와 같은 전통적인 인사말을 하는 것도 무방하리라 본다.
이는 설이라는 전통문화를 소박하게나마 이해하는 길이다.

서울 잠원IC 부근 경부고속도로 [연합뉴스 자료사진]
설과 추석 무렵이면 ‘민족대이동’이 화두가 되고 있다. 명절연휴에 고향을 찾는 인파가 물결을 이루기 때문이다. 근래
에는 ‘어른’들이 자녀를 찾는 역류현상도 형성되고 있지만 아직은 고향을 찾는 인구가 많다.

그래서 오늘날 설은 ‘전통문화를 보존’한다는 측면과 ‘만남’을 갖는 절대적인 시간이 된다는 측면에서 소중한 것이다.
글의 출처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8997#section-2